08 기타

스토리텔링원형 > 기타
  • 페이스북 공유하기버튼
  • 블로그 공유하기버튼
  • 트위터 공유하기버튼
  • 부산의 신발 제조업
  • 부산의 신발 제조업

    신발 제조업은 부산의 대표산업으로, 70년대 신발산업의 메카 녹산·신평산단이 자체 브랜드 개발로 특수기능화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다



    시대 : -

    주소 :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

 

누구나 여행자가 되면 신발부터 구입한다.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그렇게 맹위를 떨치던 그 시절에도 트렉스타한테는 맥을 추지 못했다. 토종 신발의 품질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신발산업이 집중된 곳이 낙동강 하구의 맹금머리등 맞은편에 있는 신평산단과 건너편 녹산산단이다. 부산화성, 주식회사 아이마스티, 성일하이테크, 제일월드, 원광제이에프씨, 디엑스디, 하이롱아이엔씨 등, 신발 제조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이 무려 17군데나 몰려 있고,  구두부속제조업도 1곳이 있다. 사하구 신평동, 장림동, 다대동, 하단동 등이 중심이고, 건너편 강서구 녹산산단에는 트렉스타를 만든 곳도 있고 신발산업진흥센터도 있다. 그야말로 부산을 대표하는 신발산업이 여기에 몰려 있고, 그래서 신발산업의 메카라 부른다.부산에서 이렇게 신발산업이 성행하게 된 이유가 뭘까? 

  부산에는 애초 담뱃대와 유기그릇이 명물로 꼽혔다. 백동(白銅)으로 만드는 수저와 밥그릇은 동래의 것이 가장 모양이 좋았으며 유기에 색깔과 무늬를 넣는 정교한 세공은 전국에서도 알아주었다. 혹자는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의 풍부한 노동력으로 신발회사들의 창업이 많아지자, OEM 방식에 의한 국제적 분업관계가 가장 잘 발달해 있던 산업이 신발산업이었기 때문이라 한다. (유성임, 신발산업-토종 브랜드로 세계 1등에 도전한다!, KDI 경제정보센터, 2009년 07월호)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서 생산원가를 낮추는 데 목적이 있었던 다국적 기업의 의도와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매출을 증대시키고 부가가치를 획득하려던 개발국가 기업의 전략이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이때야말로 부산은 신발업체들의 천국이었다. 각국에서 밀려드는 주문으로 만들기만 하면 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12세기 자료인 《고려도경》에는 기술이 뛰어난 장인들을 관청에서 관리하여 신발을 만들게 했다고 하며, 15세기 편찬된 《경국대전》에는 궁궐 안에 수십 명의 갖바치를 두고 신발을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은 공장에서 다양한 신발을 만들지만, 타고 난 신분에 따라 일이 정해져 있던 그 옛날에는 신발을 만드는 사람도 따로 있었다. 신발을 만드는 일을 주로 갖바치가 맡았던 것이다. 우리의 전통 신발은 신분, 계절, 날씨, 옷차림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달랐다. 일반 백성들은 농사일이 없는 한가한 때에 볏짚으로 주로 짚신을 만들어 신었다.  중인들은 닥나무나 삼을 짚신처럼 엮은 미투리를 신었다. 양반들은 갖바치가 만든 신을 신었다. 남자들은 태사혜, 흑피혜, 흑혜, 유혜 등을 신었고, 여자들은 꽃신이라 부르는 당혜, 운혜 등을 신었다. 노인들은 발볼이 넓어 신기 편한 발막을, 관리들은 관복을 입을 때 오늘날의 부츠처럼 목이 긴 목화신을 신었다. 비가 올 때에는 나무로 굽을 높게 만든 나막신을 신었고, 신발 가죽을 들기름에 절이거나 바닥에 징을 박은 징신을 신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는 발과 다리를 따뜻하게 감싸는 동구니신을 신었고, 눈이 올 때에는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설피를 덧씌우기도 했다. 아무리 갖바치가 되려고 해도 기술이 뛰어나지 않으면 될 수 없다. 나라에서 관리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으니 우리에게는 그만큼 신발의 전통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하구에는 지금까지도 전통신발을 만드는 화혜장이 있다. 우리의 전통신발을 일컫는 화혜란 말은 목이 있는 장화형태의 신발 ‘화(靴)’와 목이 짧고 운두가 없는 신발 ‘혜(鞋)’가 합쳐진 말이다. 

  이 두 가지 기술을 갖춰야 화혜장의 명예를 얻는다. 전국적으로 두 분 밖에 없고 부산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지난 2010년 9월에 부산시지정문화재 제17호로 등록되어 사하구 감천동에 작업실이 있다.  그곳에서는 화혜장이 지금도 조부와 부친이 사용하였던 1920년대의 전통 화자본, 신본, 밑창본, 사구단지, 작두망치, 신골, 송곳과 바늘, 창뚤이판, 자 등의 사용도구를 물려받아, 흑혜, 당혜, 어름해, 목화, 태사혜, 아혜, 제혜 등 전통신발을 제작한단다. (『역사와 자연이 숨쉬는 사하 이야기』, 부산광역시 사하구, 2011) 1980년대 이후, 노동환경의 변화로 완제품의 수출과 생산은 잠시 줄었지만 나이키나 아디다스와 같은 글로벌 업체들의 개발센터가 여전히 부산에 남아 있듯이 부품 수출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신발산업의 블루오션인 특수기능화 분야에서 키 크는 신발, 웰빙-화, 첨단IT 신발 등 자체 브랜드를 개발한 우리 기업들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다. 여기에 한-미, 한-EU, 한-중, 한-호, 한-베 FTA 등은 재도약의 발판이 되고 있다. 신발산업의 메카라는 명성은 쉽게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