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설화와 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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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모당의 고모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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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빛 물고기가 범천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금샘이 있는 금정산 고당봉에는 평생을 불심으로 살다 간 범어사 화주보살(밀양 박씨)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시대 : -

    주소 : 양산시 동면 금정산 고당봉

 

부산의 진산 금정산(金井山)인 고당봉(801,1m)에 오르기 직전에 작은 당집인 고모당을 만나게 된다.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벽돌로 쌓고 황토를 칠한 작은 당이 있다. “금정산산신각 고모영신당“이라는 나무현판이 걸려 있다.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당안에 두 개의 위패가 있다. 오른쪽에는 고모영신(姑母靈神), 왼쪽에는 산왕대신(山王大神)이다. 고모당신은 범어사를 수호하고 금정산 담당하는 진호신(鎭護神)으로 모셔져 있다. 산왕대신은 절이 있는 산을 지키는 신장(神將)으로 수호신이다.

 

금빛 물고기가 범천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금샘이 있는 금정산 고당봉에는 평생을 불심으로 살다 간 범어사 화주보살(밀양 박씨)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고당봉 정상에는 마고(麻姑) 할미가 높은 곳에 앉은 당집이 있다. 한 평 정도 크기의 도리집은 지붕 높이의 돌담장이 둘러싸고, 빗장을 걸지 않는 문이 있는 고모당(姑母堂, 부산시 금정구 청룡동)에 얽힌 애듯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지금부터 4백여년 전 밀양 박씨가 결혼에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하였다. 임진왜란 때 범어사가 왜적의 방화로 잿더미가 되자 망연자실해 있는 스님들을 위해 박씨는 마을로 내려 가 동분서주하였다. 주민들의 병을 낫게 하여 시주를 받은 쌀과 잡곡 등으로 스님들의 연명을 이어 가 사부대중 사이에 칭송이 대단하였다.

 

화주보살은 죽기 전에, 우람했던 범어사의 제 모습으로 중건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몸을 아끼지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시주를 받아 오고, 절의 살림을 도맡은 화주보살로서의 중책을 맡아 살림을 꾸려 나갔다. 가난하기만 한 범어사 살림을 도맡아 꾸려가던 화주보살을 어느덧 나이가 많아 삶을 종언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보살은 주지스님께 유언을 드렸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저 높은 고당봉 아래 고모령신을 모시는 당집을 지어 고모제(姑母祭)를 지내주면 높은 곳에서 범어사의 수호신으로 절을 돕고 지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화주보살은 평생을 범어사 사세의 확장을 위해 몸바쳐 살던 화주보살은 죽어서도 범어사를 수호하기를 소원하였다. 주지스님은 화주보살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고당봉에 고모당을 불사하고 1년에 2번(정월 보름, 5월 단오)씩 고모제를 지내게 하였다. 그 후 화주보살의 유언처럼 사세가 아주 번창해진 범어사는 화엄 비보사찰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박씨 할미의 높은 덕행을 기리기 위해 범어사 모든 스님이 참석하여 고모당에서 고모영신이 된 할머니께 범어사의 번창을 기원하는 고모제를 올린다.

 

범어사를 출발점으로 하여 두 패로 나뉘어, 한 패는 비구니로 범어사-원효암-사기표석-북문-고모당으로 올라간다. 또 다른 한 패의 비구니는 범어사-내원암-사기표석-고당봉을 지나 고모당에 도착한다. 이것은 범어사 경계선인 표석을 확인하고 지신을 밟고 산신에게 고하는 과정의 절차를 밟는다. 고모당 안에는 고모영신(박씨 할미) 산왕대신(산신령, 호랑이)의 위패를 모셨다.

고모영신은 그 품에 생산과 풍요를 안겨주는 그 영원한 어미로서의 여성 산신이다. 박씨 할미의 높은 덕행을 기리기 위해 인격신이 되어 금정산을 담당하는 진호신으로 모셨다. 고모제는 1년 중 가장 양기가 양성한 5월 단오날 오시(五時, 11∼13시)에 올리는데, 제물 앞에 백성의 한재(旱災), 수재, 병재 등 삼재를 없애는 산치(山荎)·신장(神將)·발인(發靷) 축문을 읽고 염불을 독송한다. 마치면 미륵사로 내려가 석간수를 마시고 북문을 지나 범어사로 내려간다.

 

고모당은 토속신앙에 따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민중의 아픔을 치유해 주며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신성한 성역의 공간이었다. 무속신앙의 무당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밤낮 기도를 올린다. 공양으로 바친 각종 과일이며, 떡, 밥이 놓여 져 있고 가운데는 촛불과 향을 피우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수리수리 마하 수리 수수리 사바하 하늘에 계신 신령님 저는 ○○시 ○○동에 사는 ○○○이고 고당봉 산신님께 드립니다. 금정산 고모령신님 산왕대신님……"하며 소원을 빌면 자식을 얻게 되고 병도 낫게 된단다. 또한 ‘병원에서 못 고치는 마음의 병도 이 고모당에 와서 빌면 씻은 듯이 낫고 마음이 평안해지고 하는 일이 잘 풀린다.’고 찾아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고모제 산신 봉행 때 『범어사서기궤유전(1902)』의 제문으로 고모제를 엄숙하게 거행하며, 지금도 범어사에서는 고모당에 매일 관리자를 파견하여 철저히 관리 보존하고 있다. 고모신은 민간 신앙의 신으로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신앙의 대상이다. 그런데 고당당의 고모령신인 고당 할미는 불교를 위해 애쓰다가 생을 마친 보살로 그려지고 있다. 이를 통해 민간 신앙과 불교의 습합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