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인물과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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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마를 전래한 통신사, 조엄
  • 고구마를 전래한 통신사, 조엄

    조엄은 영조 때의 통신사로, 쓰시마에서 고구마 종자를 구하여 재배할 수 있게 한 선각자다



    시대 : -

    주소 : 부산광역시 영도구 웃서발로 78

 

1763년(영조39) 10월 6일, 통신사의 책임을 맡은 정사(正使)는 일본으로 가다가 쓰시마(對馬島)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풀뿌리를 발견하였다.흉년을 넘길 수 있는 좋은 작물이었다. 그는 곧바로 두어 말을 구해서 부산진으로 보내어 종자로 심게 하였다. 귀국하던 이듬해 6월에도 다시 구해 와서 동래지역의 아전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심게 하였다. 재배법과 저장법도 익혀 왔다.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면을 가져와서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의생활의 변화를 주었듯이, 이 작물이 조선 백성들의 식생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 ″고구마″였다. 고구마는 우리나라에서 유희의《물명고》(1824)에 ‘고금아’의 형태로 처음 나타나는데, 이 말은 일본 쓰시마 지방의 방언을 차용한 것이라 한다.

 고구마는 동아시아 각국에서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감저(甘藷), 감서(甘薯), 효자마(孝子麻)…. 고구마를 들여오고 60년 뒤에 청나라 사람들이 들여온 감자를 '북방에서 온 감저'라는 뜻으로 북감저(北甘藷)라고 부르면서 고구마는 한동안 남감저(南甘藷), 단감자 등으로도 불렸다. 현재도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감저'라고 부르고, 감자는 고구마와 구분하여 '지실'(地實)이라고 부른다.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는 '무수감자'(무감자)라고도 부른다.이렇게 구황기 식품을 대표하는 고구마를 처음으로 가져와 당시 식생활 개선에 큰 도움을 준 인물이 조엄이다. 그는 1719년(숙종45) 풍양조씨 조상경과 이정태의 딸 부평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가 명서(明瑞)이고, 호가 영호(永湖)이며, 시호가 문익(文翼)이다. 

 1738년(영조14)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내시교관(內侍敎官)․대사헌․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1776년(정조1) 홍국영의 무고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김해지역에서 병사하였으나 이후 신원되었다. 대표적인 저서로 통신사로 파견되었을 때 쓴 일기체 기행문 <해사일기(海槎日記)>가 있다.

 1757년(영조33) 7월부터 이듬해 12월 경상도관찰사로 임명될 때까지 동래부사를 역임하면서 다양한 업적도 남겼다. 임진왜란 때 다대포전투에서 전사한 다대포첨사 윤흥신(尹興信)의 업적을 다시 조사하여 1765년(영조41) 윤공단(尹公壇)이 세워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또한 범어사 등과 같은 사원의 부담을 줄어 주었으며, 동래부 관할에 있는 초량왜관의 운영을 개선하기도 하였다.

 1763(영조39)에는 일본으로 파견되는 사절인 통신사의 정사로 임명되어 이듬해 돌아올 때까지도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수차(水車) 및 배다리(舟橋)의 제작방법을 알아 보았고, 대마도와 일본 지도를 구해 베껴 왔으며, 역관들에게 바른 일본어를 익히게 하였다. 그를 조저(趙藷,고구마)라 불렀으며, 그가 가져온 고구마를 ‘조내기고구마’라 한다. 이 때문에 영도구 청학동 일원에 있는 조내기 마을이 고구마의 시배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1808년(순조8)에는 범어사 승려들이 조엄의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 세운 「순상국조공엄혁거사폐영세불망단(巡相國趙公曮革袪寺弊永世不忘壇)」이라는 비석이 현재 금정구 범어사 입구 산 중턱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당시 범어사를 방문한 조엄은 관례를 깨고 입구에서 말에서 내려 경내를 참배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이 설화는 현재 범어사 낭백(浪伯)선사와 조엄의 환생 전설로 전승되고 있다.

1763년(영조40)부터 1765년 11월까지 동래부사를 지낸 강필리(姜必履)는 통신사 조엄이 쓰시마에서 가져 온 고구마의 재배에 몰두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 재배와 보관 및 이용 방법을 알리기 위한 <감저보>를 저술하여 고구마를 널리 보급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 시기에 다른 사람들도 씨 고구마를 얻어 재배를 시도하였으나 강필리가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