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문화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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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룡마을, 창작촌으로 되살아나다, 아트인 오리
  • 대룡마을, 창작촌으로 되살아나다, 아트인 오리

    무인 카페와 마을 내 작품들은 수년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외부에 알려졌다. 특히 여행 블로그 운영자들이 앞다퉈 소개하면서 대룡마을은 전국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시대 : -

    주소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기장 대룡마을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五里)에 있다. 대룡(大龍) 마을은 마을 앞에 있는 큰 연못에 어미 용(龍)이 아들 둘, 딸 둘을 데리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부터 연못에 물이 줄어 함께 살기 너무 좁아져서 용 가족은 헤어져야 했는데, 흩어진 용들이 자리 잡은 지역의 이름에 '용'자가 붙었다.

 

인근마을인 기룡마을, 용소마을 등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미 용은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울다 쓰러져 바위로 변했고 그 바위가 '용바위' 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골짜기는 큰 어미 용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대룡골(용바위골)이라 불리고 있으며, 이곳에 자리 잡은 마을을 대룡마을이라고 한다.

 

본래 축산업이 주업이었으나 1990년대 중반 우유 파동 사태를 겪으며 축산 농가들이 모두 폐업했다. 이후 미술 작가들이 유입되면서 시들어가던 마을이 활기를 되찾았다. 야트막한 구릉 아래 자리한 시골 마을에 작가들의 작업실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이곳 출신으로 조형예술을 전공한 정동명 동아대학교 외래교수가 자신의 집 한 편에 작업실을 열었다. 이후 지인들이 하나둘 작업실을 열면서 조각, 회화, 도자기, 목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모여 사는 창작촌으로 변모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낮은 임대료가 작가들을 불러들이는 요인이 됐다.

 

처음 작업실 문을 열게 된 정동명 교수는 “오리는 고리원전에서 가까워 수십 년 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와서야 그린벨트가 풀렸고, 또 축산 농가가 다 폐업하는 바람에 비어 있는 건물이 많았습니다. 축사와 곡물 창고가 작업실로 바뀌게 됐다라고 하였다.

 

대룡마을 작가들은 삼삼오오 모여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인 공동휴게실도 마련하게 되었다. 휴게실은 각자 작품 활동을 하느라 바쁜 관계로 관리자는 따로 없었다. 현재 대룡마을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무인 카페 ‘아트인오리(Art in Ori)’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아트인 오리’는 연중 휴일 없이 운영된다. 정 교수의 어머니가 아침 일찍 청소를 위해 들어서는 순간부터 작가들이 담소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 10~11시까지 문을 연다. 방문객은 카페 입구에 놓인 작은 상자에 1인당 3천 원을 넣고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무, 호박, 부추 등 마을 사람들이 기른 농산물도 판매된다.

 

대룡마을 곳곳에는 그동안 마을을 거쳐 간 작가들이나, 현재 상주하면서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작가들이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마을에 작품을 기증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에는 개성이 넘치는 벽화들도 볼 수 있다.

 

무인 카페와 마을 내 작품들은 수년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외부에 알려졌다. 특히 여행 블로그 운영자들이 앞다퉈 소개하면서 대룡마을은 전국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계절별로 우렁이 채집, 야생화 관찰, 농작물 수확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