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교 관련서 일괄
    • 한일 외교 관련서 일괄


      주소 : 부산시 부산진구 월드컵대로 462

      문의처 :

      관리번호 : 제3호  (지정일자 :2023-11-29)

    관리번호 : 제3호
    지정일자: 2023-11-29
    시대: 1867년~1909년

    ‘한일 외교 관련서 일괄’은 메이지 정부가 조선과의 관계를 기존의 ‘조공체제’가 아닌 ‘근대적’인 관계로 전환하는 한편, 「조일수호조규」 의 체결 이후 조선을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조선 정부와 교섭을 진행하던 시기에 생산된 문서들로, 조선 식민지화 과정에서 조선과 일본 간의 교섭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첫째, 조선의 개항 과정에 대해 과거에는 일본의 강압의 의해 조선이 ‘불평등조약’을 어쩔 수 없이 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설명되었으나, 최근에는 조선도 나름의 대응을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운요호 사건이나 조선과의 통상조약 체결 과정은 일본 내의 불만, 특히 조선 침략을 주장하는 세력(정한론자)을 달래고 내부의 혼란을 수습할 목적으로 다급하게 진행된 측면이 있으며, 조선은 조선 나름대로 조선 측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본 ‘한일 외교 관련서’는 ‘서계사건’ 이후 조선과의 통상조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일본 메이지 정부가 조선과 어떻게 교섭해 왔는지, 일본의 침탈 야욕에 대해 조선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상세한 기록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둘째, 개항은 조선이 서구의 ‘근대’와 접촉하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부산항이 조선의 첫 번째 개항장으로 선택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초량에 일본의 공관인 왜관이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부산항은 개항 이전 조선과 일본을 매개하는 외교・교역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첫 개항장으로, 우리 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본 ‘한일 외교 관련서’들은 메이지유신 전후부터 강제병합 전까지 조선이 개항한 이후 일본의 식민지로 되는 격동의 시기 조선과 일본의 외교적 사안들을 살펴볼 수 있는 문서들로, 이 문서들이 생산된 장소는 대부분 ‘부산’이었다. 일본관리관의 파견, 부산 일본 전관조계의 설정, 두모진 해관의 설치과 철폐 등의 일련의 과정은 우리 나라의 근대화・식민화 과정에서 ‘부산’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또한 동래 지역민과 부산항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의 동향들도 확인할 수 있어 부산 지역사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하게 활용될 자료이다.‘한일 외교 관련서’는 모두 일본 측에서 간행한 자료로,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일본 측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어 행간의 의미를 잘 읽어야 하는 한계는 있다. 하지만 개항 전후 조선과 일본 간에 외교문제로 비화되었던 여러 중요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일본 관리와 동래부 관리가 교섭했던 내용, 지역사회에서 양국 거주민 간에 일어났던 사건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일본과의 교섭에 응했던 조선의 입장이라든가 부산이라는 지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근대문서이다. 모두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에만 소장되어 있는 국내 유일본으로, 부산 소유의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크다. 이에 본 ‘한일 외교 관련서’ 12종 42책을 ‘부산시 등록문화재’로 등록・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