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의용단
    • 25의용단


      주소 : 부산광역시 수영구 연수로379번길 42

      문의처 : 051-610-4067

      관리번호 : 제12호  (지정일자 :1972-06-26)

    관리번호 : 제12호
    지정일자: 1972-06-26
    시대: 조선시대(1853년)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의 동남해안 방어의 책임을 맡고 있던 경상좌수사 박홍(朴泓)은 경상좌수영성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쳤고, 경상좌수영성을 점령한 왜군은 7년 동안이나 이곳에 주둔하며 약탈과 살육을 감행하였다. 이와 같은 왜군의 침략에 맞서 경상좌수영의 수군과 성민 25인은 죽기를 각오하고 왜군과 싸우기로 결의하고 7년 동안 유격전으로 왜군에게 대항하였는데, 25의용단은 그 분들의 호국충절 정신을 기리기 위해 쌓은 것이다. 이들 25분의 사적(事蹟)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609년 동래부사 이안눌(李安訥)이 수영 지역 사람들의 청원에 따라 25분의 사적을 널리 수집하여 정방록(旌?錄)에 싣고, 그 분들의 집 문에 <의용(義勇)>이라는 2자를 써 붙인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후 순조(純祖) 때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은 후손들에게 역(役)의 의무를 면제시켜 주고 글을 지어 25의용의 공적을 포장(褒?, 공적 등을 기리고 칭찬함)하였고, 1853년(철종 4)에는 경상좌수사 장인식(張寅植)이 지금의 자리에 단비를 세워 의용단이라 이름 붙이고 재실(齋室)을 지어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향을 봉행하였다. 제주(祭主)는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가 되었으며, 매년 3월과 9월의 정일(丁日)이 파제일(罷祭日)로 되어 있다. 1894년 군제개혁으로 경상좌수영이 폐지되자 수영면의 면장이 제사를 주관하였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면장이 부임한 이후에는 수영기로회(水營耆老會)에서 제향을 봉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산시와 수영구에서는 순국선열의 호국충절 정신을 기리고, 효율적인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정화사업을 추진하여 2001년 3월 사당인 의용사(義勇祠)와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등을 건립하고 경역도 확장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