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수영성지
    • 경상좌수영성지


      주소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일원

      문의처 : 051-610-4067

      관리번호 : 제8호  (지정일자 :1972-06-26)

    관리번호 : 제8호
    지정일자: 1972-06-26
    시대: 조선시대

    "조선시대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 약칭 경상좌수영)은 원래 감만이포(戡蠻夷浦, 남구 감만동)에 있었으나, 태종 때 울산 개운포(開雲浦)로 옮겨 갔다가 임진왜란 직전에 동래 남촌(南村, 수영동)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남촌으로 옮긴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1636년(인조 13) 사천(絲川, 수영천)의 홍수로 선창의 수로가 매몰되어 뱃길이 통하지 않아 다시 감만이포로 옮겼으나, 감만이포는 왜관과 가까워 군사기밀이 누설될 우려가 있다 하여 1652년(효종 3)에 또다시 경상좌수영의 옛 터인 지금의 수영동 지역으로 옮겨와서 1894년(고종 31) 군제개혁으로 수영이 혁파되기까지 243년간 현재의 위치에 있었다. 경상좌수영에는 무관인 정3품의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 약칭 경상좌수사)가 주재하였고, 경상좌수영 관할에는 1개의 첨사영(僉使營)이 있었으며, 낙동강의 동쪽에서 경주까지의 바다를 방어하는 총 책임을 맡고 있었다. 경상좌수영성을 최초로 쌓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경상좌수영을 이 곳으로 옮겼을 때는 이미 성이 있었고 이 성은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성은 1652년 경상좌수영을 다시 이 곳으로 옮겨 온 후 쌓은 것으로 파악된다. 경상좌수영성에는 동문인 영일문(迎日門), 서문인 호소문(虎嘯門), 남문인 주작문(朱雀門), 북문인 공진문(拱辰門) 등 4대문이 있었으며, 이들 성문에는 각기 문루가 있었다. 성문은 일정한 시각에 폐문루(閉門樓)와 관해루(觀海樓)에 달아둔 북을 울리는 것을 신호로 열고 닫았다. 경상좌수영성 축성 공사에 동원된 인력 현황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현재 남아 있는 성벽 돌에 언양, 양산 등의 지명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부산(동래) 지역 인근 고을의 백성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단부의 큰 성벽 돌을 보면 경상좌수영성이 매우 견고한 성이었음을 알 수 있음과 동시에 이 성의 축성이 고된 노역이었음도 알 수 있다. 경상좌수영성 남문 홍예석이 수영사적공원 내에 남아 있다. 경상좌수영성지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 국토를 최전선에서 방어한다는 특수성과 수군절도사영성으로서의 희소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국토방위를 위한 선조들의 정신과 이념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국방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