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읍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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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 복천, 칠산, 명장, 안락동 일대

      문의처 : 051-550-4086

      관리번호 : 제5호  (지정일자 :1972-06-26)

    관리번호 : 제5호
    지정일자: 1972-06-26
    시대: 조선시대(1731년)

    동래읍성은 동장대(東將臺)가 있는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馬鞍山)을 거쳐 서장대(西將臺)가 있는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 동래 시가지 중심 지역인 평탄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역에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 형식으로 축조된 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읍성이다. 고려말~조선 초기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동래읍성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 공을 중심으로 지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왜군에 맞서 장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임진왜란 초기의 최대 격전지이자 7년간 왜군이 점령하여 약탈을 자행했던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현장이다.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어 있던 성을 1731년(영조 7)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임진왜란 당시의 동래읍성보다 훨씬 규모가 큰 읍성을 쌓았는데, 이때 쌓은 성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동래읍성의 기원이다. 동래읍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 북문, 인생문(人生門) 및 암문(暗門)이 있고 각 문에는 문루(門樓)가 있었는데, 동문을 지희루(志喜樓), 서문을 심성루(心成樓), 남문을 무우루(無憂樓), 암문을 은일루(隱一樓)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시가지 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일제에 의해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의 성벽은 철거되었고,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성벽도 민가가 점유하여 마안산을 중심으로 한 산지에만 성터가 남아있는데, 현재 산지를 중심으로 남아있는 성터(城址)를 시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