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수도 대통령관저
    • 임시수도 대통령관저


      주소 :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3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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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번호 : 제546호  (지정일자 :2018-11-06)

    관리번호 : 제546호
    지정일자: 2018-11-06
    시대: 1926년

    "임시수도 대통령관저는 일제강점기에는 경상남도지사의 관사로, 한국전쟁기에는 임시수도의 대통령관저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1925년 4월 진주에 있던 경남도청이 부산으로 옮겨옴에 따라, 1926년 8월 지금의 자리에 경상남도지사 관사가 준공되어 줄곧 경남도지사 관사로 사용되었다. 한국전쟁으로 1950년 8월 18일 수도가 부산으로 옮겨오자 경남도청 본관이 임시정부청사로, 경남도지사 관사는 이승만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게 되었다. 1951년 1.4후퇴로 다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어 1953년 8월 15일 서울로 환도(還都)할 때까지 임시수도의 대통령관저로 사용되었다. 1983년 7월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옮겨가면서 임시수도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과 유물 전시를 위하여 1984년 6월 25일 임시수도기념관으로 단장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유품을 중심으로 유물을 전시하였다. 입구 현관에는 「사빈당(思?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면서 읊은 시의 ‘한양을 떠나지만 큰 계책이 있다(去?在大計)’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서울 수복 및 환도의 의지가 담겨 있는 당호(堂號)이다. 임시수도기념관은 한국전쟁 44주년인 1997년 6월 24일 한국전쟁 관련 내용과 임시수도로서의 부산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새롭게 단장하여 기념관 및 동족상잔의 비극을 이해하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2000년에는 한국전쟁 당시 유물을 추가로 확보하고 건물을 전면 개?보수하여 전시공간을 재단장 하였다. 이 건물은 2층 건물로 일본식과 서양식의 절충형식이다. 도지사의 대외 활동 공간인 대현관과 응접실, 서재는 서양식으로, 도지사 가족의 주거공간은 일본의 전통적인 주거양식으로 구성하였다. 20세기 초 일본이 수용한 근대적인 서양식 건축에 일본의 전통적인 주거형식을 절충시킨 새로운 주거형식의 건물로 일제강점기 근대건축의 수용 및 발전 과정을 잘 보여주는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건물이다. 또한 일제의 수탈과 착취의 중심이었던 조선총독부의 고위 관료인 경남도지사 관사였다는 점에서 후손들에게 일본의 침략상을 교육시킬 수 있는 좋은 역사 자료이다. 아울러 한국전쟁기에 3년여 동안 임시수도의 대통령관저로 사용되면서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역사적 현장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한국근대사에서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닌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