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설화와 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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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정동의 회화나무
  • 괴정동의 회화나무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에는 부산광역시 보호수로 지정된 회화나무 2그루가 있다. 한 그루의 회화나무(사하구 괴정동 1247-35)는 수령이 약 620년으로, 1980년 12월 8일 보호수(제2-8호)로 지정되었다.



    시대 : -

    주소 :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 1247-35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회화나무 2그루가 있다. 한 그루의 회화나무(사하구 괴정동 1247-35)는 수령이 약 620년으로, 1980년 12월 8일 보호수(제2-8호)로 지정되었다. 다른 한 그루의 회화나무(사하구 괴정동 1244-5)는 수령이 약 600년으로 추정되며, 보호수(제2-9호)는,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16호로 지정되었다가 생육 공간이 매우 협소하여 보호 관리가 어려워 1993년 4월 16일 지정이 해제되었으며, 1993년 10월 12일 부산광역시 보호수로 재지정 되었다.

 

먼저 회화나무(제2-8호)는 높이 20m, 가슴 높이 둘레 6.2m로 보호수 안내판에 표기되어 있다. 지표면에서 가지가 7개로 나뉘어 자라고 있어 하나의 나무가 아니라 7그루의 나무가 모여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땅속에서 8개의 가지가 자라 팔정자나무라 불렸으나, 태풍 피해를 입어 7개의 가지만 자라고 있다. 다른 회화나무(제2-9호)는 높이 20m, 가슴 높이 둘레 6.5m로 보호수 안내판에 표기되어 있다. 뿌리 부분 1m 정도의 높이에서 큰 가지가 3갈래로 갈라져 자라고 있다. 가지가 갈라지는 부분은 동공(洞空, 물체 속에 아무것도 없이 빈 것을 뜻하는 말로 구멍이라고도 함) 피해가 있어 외과 수술이 진행된 흔적이 있다.

 

회화나무(2-8호)는 오래된 수령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조선 말 다대포 고을에 포악한 첨사가 내려온 뒤 주민들이 나무 정자에서 첨사의 폭정을 얘기하곤 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린 첨사가 누각을 보수한다는 명목으로 8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나무를 잘라 버렸다고 한다. 그 뒤 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8개의 가지를 가진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여 이곳을 팔정자(八亭子)라 부른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팔정자 나무의 아버지뻘 되는 거대한 회화나무가 수난을 당한 것은 조선 어느 임금 때인가는 확실하지 않으나 동래 부사가 이곳을 지나다 우연히 이 나무를 발견하고 다대포진 첨사에게 동래부 동헌의 기둥으로 쓰게끔 베라는 지시를 내렸다.

 

동래부사의 벌목령이 내려졌지만 신주로 모시는 나무에 선뜻 도끼질을 하려는 목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다대포진 첨사가 나무 앞에 사형수에게 내리는 고배상을 차리고 밑둥치에는 ‘어명(御命)’이라 쓰인 종이를 붙인 뒤 큰절을 하고 직접 도끼를 들어 왼쪽으로 세 번 도끼질을 하였다. 그제야 목수들이 달려들어 나무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나무의 밑둥치를 흙으로 덮어 마치 사람의 무덤처럼 만들어 주었다. 이후 신기하게도 이곳에서 새순이 돋아났는데, 그중 8가지만이 자라서 오늘의 팔정자 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팔정자나무 아래에서는 아직도 마을의 무사 평안을 비는 동제가 매년 5월 7일 열린다. 지금의 ‘괴정동(槐亭洞)’이란 이름도 팔정자 나무가 회화나무, 즉 괴목(槐木)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또한 회화나무(제2-9호)는 마을의 안녕을 지켜 준다는 전설이 있어 봄가을 연 2회 동제를 지내고 동민 대회를 개최하는 미풍이 있으며, 나무 아래에서 득남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나무에도 전설이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마을 사람들이 나무 아래 모여 ‘왜군이 물러가게 해 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밀고로 이런 사실이 알려져 왜군이 나무를 베기 위해 마을로 들어왔고, 이때 여러 사람들이 이를 막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왜군이 죽은 사람들을 잘린 나무와 함께 그곳에 묻어 버렸다고 한다. 뒷날 잘린 나무에서 여러 개의 가지가 나왔는데, 가지 수가 죽은 사람들의 수와 같아 마을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나무 아래 우물물을 떠서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올려 죽은 이들을 위로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회화나무(제2-9호)는 ‘통샘’ 또는 ‘단물샘’으로 불리는 샘 뒤편에서 자라고 있다. 이 우물물은 가뭄이 들어도 물이 줄지 않고 맑아 예전에는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곳에는 옛날 어느 부부가 당산을 짓고 백일 동안 기도를 드려 아들을 얻었다고 전해온다. 또 나환자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나환자가 이 나무 밑에서 백 일간 기도를 드렸다. 하루는 이 나환자의 꿈에 흰 도복을 입은 도사(목신)가 나타나 "그대의 정성이 하도 극진해 그대에게 샘물(약수)을 줄 것이니 그 물을 먹고 목욕을 해보아라"고 말한 후 사라져버렸다. 잠을 깬 이 나환자는 과연 나무 밑의 뿌리부분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둘레를 파보니 샘물이 솟아올라 그 물을 먹고 목욕을 하니 나병이 완치되었다고 한다.

 

단물샘의 우물이 지금은 도로가 생겨 샘에서 내려가는 물길은 보이지 않으나, 도로 건너편에는 아직까지도 이용되고 있는 ‘큰 새미걸’이라 불린 빨래터가 남아 있다. 현재는 정비가 이루어져 예전 모습은 남아 있지 않으나 여전히 이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있다. 이 빨래터를 지역 명을 따서 ‘괴정동 빨래터’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 우물 뒤편에서 자라고 있는 회화나무만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나, 옆쪽에서 자라고 있는 회화나무 또한 보호수 지정이 필요해 보인다. 보호수로 지정된 괴정동 회화나무 2그루는 괴정 1동장이 관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