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인물과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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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대첨사 윤흥신
  • 다대첨사 윤흥신

    윤흥신은 조선시대의 명문가 ‘파평 윤씨’로 다대첨사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발발해 왜적에 항전하다가 전사했다. 형제가 함께 순국해 윤공단에 모셔져 있다.



    시대 : 조선시대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1143

 

동구 초량3동 1143번지에 있는 윤흥신(尹興信,?~1592년)공의 석상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부산진성을 함락시키고 다대포를 포진 공격했을 때 다대포진을 지키던 윤흥신 다대첨사는 군민과 함께 힘을 합쳐 막강한 왜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순사하였다."

 부산시는 장군의 애국정신을 기려 1981년 9월, 초량3동 1143번지 일대에 석상을 건립하였다. 그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파평이다. 을사사화에서 화를 입은 윤임의 5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1545년에 사망하였으므로 그 이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1582년 진천현감이 되었으나, 문자를 해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가, 1592년 수군에 등용되어 다대진을 수비하는 다대포첨사가 되었다. 그가 다대포첨사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왜적은 부산진을 함락한 후, 다대진을 공격해왔다. 그는 아우와 함께 800명의 군사로 분전하여 1만의 왜군을 격퇴하였다. 하지만 조선군은 첫 전투에서 대부분의 물자를 소비하였고, 다음날 왜군의 재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모두 순국했고 그 자신도 아우 윤흥제와 함께 성에 남아 항거하다가 전사했다. 다대포전투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두 번째로 벌어진 전투로, 병력, 식량, 무기 등 모든 것이 부족했던 당시 조선군으로서는 이길 수 없는 전투였으나 그들은 의연히 싸워 순국하였다.

 2005년 9월, 부산 사람들은 동남연안과 낙동강 하구를 바라보이는 몰운대의 능선 위에 벽체도 없이 큰 누각처럼 홀로 서있는 정면 5칸 기와 건축물을 두고 논란이 붙었다. 다대포객사라는 기존 명칭과 용도를 다대포첨사영으로 바꾸어 불러야 한다는 뜻밖의 논란이었다. 객사이면 회원관(懷遠館)이 되고 동헌이면 수호각(睡虎閣)이 된다. 이 건축물이 간직한 역사․문화적 상흔이 되살아나는 듯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수군첨절제사영(水軍僉節制使營)의 안에 배치되어 있던 건축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 건축되었다가 1825년(순조25)에 중수되던 객사다. 원래 이곳에는 객사와 함께 다대첨사의 업무 공간인 수호각이라는 동헌을 비롯하여 관아 건물과 창고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객사는 국왕을 상징하는 전(殿)의 글자를 새긴 나무패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달을 보면서 국왕이 있는 한양의 대궐을 향해 절을 올리는 공간이나 사신의 숙소로 이용되었다. 1900년대 이후부터는 상당수가 학교 건물 등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다대포는 한․일 간 해상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다. 해상방어의 중요성으로 인해 1407년(태종7)에 다대포천호(千戶)가 배치되었다가 1417년에 만호(萬戶)를 두어 방비를 강화하였다. 1490년(성종21)에는 다대포성을 쌓게 되었으며, 1544년(중종39)에는 관료를 승격시켜 수군첨사를 배치하였다. 

 1883년(고종20)에는 영도에 절영도진이 설치되면서 다대포진이 폐지되었다가 1885년에는 다대진에 다시 첨사영이 설치되었다. 지금의 부산 유아교육진흥원의 옆에서 돌로 쌓아다가 허물어진 다대포성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이곳 뒷산인 아미산에는 윤공단(尹公壇)이라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1592년(선조25) 4월 14일부터 침략 왜군과 싸우다가 순절한 다대첨사 윤홍신 등을 제향하는 석단이다. 중앙의 비석에 첨사윤공흥신순절비(僉使尹公興信殉節碑), 그 양측의 비석에 의사윤흥제비(義士尹興悌碑) 및 순란사민비(殉亂士民碑)가 있다. 1765년(영조41) 다대첨사 이해문(李海文)이 윤흥신의 순절 장소라 전하는 다대포 객관의 동쪽에 처음 건립하고 음력 4월 15일 향사를 지내다가, 1904년부터는 다대초등학교의 전신인 다대포사립실용학교의 건물로 사용되다가 1970년에는 다대초등학교의 교정에서 몰운대로 이전하여 복원했다.

 1972년 6월에는 다대포객사라는 명칭으로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고, 1981년 9월에는 그의 애국정신을 기려 초량3동 1143번지 일대에 윤흥신공 석상을 건립하였다. 현재 다대포객사가 위치한 몰운대에는 1592년 9월 임진왜란 때 부산포해전에서 이순신장군과 함께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녹도만호 정운의 행적을 기린 유적도 있다.

 1798년(정조22)에 건립하였으며, 비문의 앞면에는 충신정운공순의비(忠臣鄭運公殉義碑)라 쓰여져 있다. 1972년 6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0호로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