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인물과 자랑

스토리텔링원형 > 인물과 자랑
  • 페이스북 공유하기버튼
  • 블로그 공유하기버튼
  • 트위터 공유하기버튼
  • 민족의 애환을 노래한 현인
  • 민족의 애환을 노래한 현인

    현인은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시대를 선도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가수’라는 별명이 있으며, 피난민의 애환을 표현한 〈굳세어라 금순아〉, 한국전쟁 기간 중에 만들어진 <전우야 잘 자라> 등 주옥같은 노래가 전한다



    시대 : -

    주소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712-4

 

 대중가수로, 본명은 현동주(玄東柱)이다. 1919년 12월14일,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 183번지에서 아버지 현명근과 어머니 오봉식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영국 스탠다드석유회사에 재직하고 어머니는 신여성이었을 정도로 가정환경도 유복한 편이었다. 1938년에 경성 제2고보를 졸업하고, 1942년에는 일본 도쿄음악학교(현 도쿄예술대학) 성악과를 졸업하였다. 일제의 강제징용이 시작되자, 중국 상하이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악단 '신태양'을 조직해서 활동하였고, 해방 이후 귀국하여 악단을 다시 조직하고 주로 극장 무대에서 연주를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작곡가 박시춘을 만난다. 당시 그를 찾아온 박시춘이 자신의 곡을 불러달라고 청하자, 그는 "성악도가 유행가 따위를 부를 수는 없다"며 거절한다. 박시춘의 거듭된 권유로 말미를 달라고 한 그는 결국 대중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첫 작품은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의〈고향만리〉(1945)였고, 이어 <신라의 달밤>(1947)을 받았다. 데뷔곡처럼 되어버린 <신라의 달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단번에 그를 가요계의 정상에 등극시켰다. 아울러 ‘유호-박시춘-현인’이라는 최고의 ‘트리플 콤비’가 구축되었다.

 이후 현인은 <비 나리는 고모령>, <고향 만리> 등을 연달아 히트시킨다. 한국전쟁 당시의 피난민들의 슬픈 정서를 잘 보여주는 <굳세어라 금순아>(강해인 작사/박시춘 작곡/오리엔트R8025A)는 수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이 곡 외에도, 〈비 내리는 고모령〉(유호 작사/박시춘 작곡),〈청포도 사랑〉(이화촌 작사/나화랑 작곡)을 부르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번안곡〈베사메무초〉(현인 번안)와 〈꿈속의 사랑〉(손석우 작사/ 중국가요 번안·편곡)을 불러 번안곡 열풍을 일으켰다.당시의 대중가수들 중에서 학력이 가장 높았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 후 음반을 발표하여 데뷔한 가수로는 그가 처음이다 보니 그에게 '대한민국 가수 제1호',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가수’라는 별명이 따라 붙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시대를 선도하며 대변하는 가수가 되었던 것이다.  피난민의 애환을 표현한 〈굳세어라 금순아〉,한국전쟁 기간 중에 만들어진 <전우야 잘 자라>(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 1950년 10월 발표) 등 현인의 주옥같은 노래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평소 ‘좋은 군가는 대포소리에도 지지 않는 예술적 무기다.’(박성서 외, 『한국전쟁과 대중가요, 기록과 증언』. 책이있는풍경, 2010, 박성수 서문)고 말할 정도로 노래의 의미를 부여해왔던 작곡가 박시춘, 그에 걸맞게 불멸의 가사를 숱하게 남긴 작사가 유호, 이들이 만든 노래가 한국전쟁 중 피난민들에게 삶의 의지를 북돋워주고 피난지 수도 부산을 떠나며 더욱 부산을 기억하게 만든 건 대중가수 현인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대중가수는 대중의 꿈을 먹고 사는 공인이고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현인의 창법은 매우 특이하다. 그의 노래는 해방 전후에 퍼져 있던 기존 일본식 가풍에서 벗어나 성악에 기초한 특유한 떨림이 있었다. 이는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 색다른 느낌을 갖게 함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샀다. 또한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타국에 선율을 번안곡이라는 자국의 분위기로 끌어낸 그의 예술적 능력도 대중들에게 인정되면서 그의 대중음악적 감각의 탁월성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는 1974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민 가서 '가스라이트'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다가, 한국에서의 무대가 그리워서 1981년에 귀국한다. 1991년에는 <노래하는 나그네>, <길> 등의 신곡을 발표하며, 1998년까지는 KBS가요무대와 악극 등에 출연하여 왕성한 활동을 보인다. 2002년 4월13일, 지병인 당뇨병의 악화로 84세의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