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자연과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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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암절벽의 이기대
  • 기암절벽의 이기대

    이기대는 두 기생에 얽힌 이야기와 일본군 포진지 구축의 역사가 전해지는 곳으로, 화산활동이 남긴 해안 절경이다



    시대 : 조선

    주소 :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3동 이기대공원로 105-20

 

 

장자산자락이 동편 바다와 접한 곳에 이기대가 있다. 장산봉(225.3m)이 바다로 면한 동쪽은 기암괴석의 바위와 수목 그리고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아내는 곳이지만 험한 지역이어서 사람들이 왕래하기에는 위험하다. 그래서 바다에서 배를 타고 그 경관을 즐기지만, 이기대 자리만은 직각으로 된 절벽이 아니라 바다에 접한 비스듬한 경사로 기울어진 암반이어서 거의 평면에 가깝다. 이곳은 낙동강하구트레킹코스, 몰운대, 두송반도, 송도반도트레킹코스, 두도, 태종대트레킹코스, 오륙도트레킹코스, 이기대트레킹코스, 장산, 금정산트레킹코스, 구상반려암, 백양산 등 모두 12곳의 부산국가지질공원 중 하나다. 약 8천만 년 전 격렬했던 안산암질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과 화산재, 화쇄류가 쌓여 만들어진 다양한 화산암 및 퇴적암 지층들이 파도의 침식으로 발달된 해식애, 파식대지, 해식동굴과 함께 천혜의 절경을 이루고 있고, 해안가를 따라 오륙도까지 이어지는 트레일코스를 통해 구리광산, 돌개구멍, 말꼬리구조, 함각섬석 암맥 등의 다양한 지질과 지형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지질 탐방객들을 위해 1시간~1시간 30분쯤 소요되는 ‘어울마당~해녀막사~동생말’ 코스 1.5㎞에는 해설도 해준다. 

 화산각력암층 바위. 백악기 말 당시 폭발적인 화산 분출로 인해 쌓인 안산암질 화산각력암이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을 이기대공원 탐방로에서 볼 수 있거니와 해녀 막사 근처에서는 화산분출시 쌓였다가 파도에 의해 떨어져 나온 돌들을 관찰할 수 있다. 한때, 이기대 바위의 물웅덩이가 공룡발자국이라고 알려져 표지판까지 세워졌으나, 공룡발자국의 크기도 일정하지 않고 방향성도 없다는 것이 알려져 이제는 철거되었다. 이기대지질공원 해설사의 말을 들어보면 돌개구멍이라 설명하고 있다. 바위의 빈틈에 들어간 자갈이나 모래가 파도에 의해 회전하면서 서서히 바위를 깎아내 만들어진 구멍으로, 이런 것을 포트홀이라 한단다. 어떤 사람은 이 공룡발자국을 마그마가 냉각될 때 그 속에 암석 파편이 포함된 채로 굳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암석파편이 박힌 자리가 불안정해지면서 암석파편이 빠져버리고 남은 흔적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화산이 분출한 뒤 용암이 식지도 않았을 때 공룡이 뜨거운 용암 위를 걸어 다녔었다는 뜻이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다. 

 한국동란 이후 이곳은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었다. 군작전지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93년에야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1997년 공원지역으로 지정되어 관리해 오면서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안산책로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이기대의 빼어난 절경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해안산책로로 각광받고 있다. 용호부두 동생말에서 출발하여, ‘못난이골짜기-목너머-이기대-장바위-남끝-처마바위-박골새-농바위-산태골-용호동포진지-오륙도해맞이공원’ 코스를 택해 걸으면 갖가지 이름과 전설을 지닌 절경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반대 코스를 택해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도 재미있다. 오륙도해맞이공원, 그 앞쪽에 설치된 스카이워크, 오륙도등대 등등… 부산 바다가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다. 

 동생말과 어울마당에서 바라보는 해질 무렵의 야경도 으뜸이다. 야간 데이트 코스, 포토그래퍼들의 출사 코스로 안성맞춤이라 알려져 있고, 봄이면 순환도로변의 화사한 벚꽃과 유채꽃을 볼 수 있고, 여름이면 멕시코 해바라기라 불리는 루드베키아 활짝 핀 꽃길을 만나는 행운도 있다.  이기대의 내력은 이형하의《동래영지(東萊營地)》에 ″좌수영에서 남쪽으로 15리에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서 그리 말한다″고 한 것이 기록상 처음이다. 이 기록은 그가 좌수사(1849.12.30~1850.8.21,재임)로 있으면서 종전의 기록을 보고 보충한 책이다. 향토사학자, 최한복은 ‘의기대(義妓臺)’란 지명에서 이기대가 나온 것이라며,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수영성을 함락시키고는 부근의 경치 좋은 곳을 가려 축하잔치를 열었는데, 그때 수영의 의로운 기녀가 자청해서 그 잔치에 참가하여 왜장에게 술을 잔뜩 권하고는 술에 취한 왜장을 안고 물속에 떨어져 함께 죽었다″고 하는 전설을 전한다. 

 최근에는 그 기생이 임진왜란 때 왜장을 껴안고 죽은 기생 남이와 경아라는 두 자매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하였다. 또, 경상좌수사가 두 기생을 데리고 놀아서 이기대라 불렀다는 말도 있다. 모두 그럴 듯하다.  일제강점기말, 용호동 오륙도 해안에는 영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일본군포진지가 구축되었다. 5천 평 가량의 부지에는 무게 100톤, 포신의 길이만 18.8m에 달하는 대형 해안포 2문이 설치되었고, 지하에는 폭14m, 길이 45m의 동굴도 뚫려 있다. 지금도 바닥에는 포탄을 운반했던 레일과 수압조절기, 승강기를 설치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당시 이곳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 수천의 조선인 인부가 동원되었고, 벽이 무너지며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일본은 천혜의 이기대 해안을 절개하여 거대한 지하 포진지를 구축하는데 걸린 기간은 16년이라 한다. 출입구 2곳에는 문의 크기만 3.5×4㎡였고 원형의 터널공법으로 견고한 진지를 지하에 구축하였다. 

 1934년에서 1938년까지 일했고 다시 1941년부터 해방 때까지 일했다고 하는 김진석의 증언이 남아 있다.(자세한 내용은 부산시 남구홈페이지를 참조할 것)  해방 후 미군은 지상에 있는 포를 폭파시켰지만, 이기대는 지금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