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문화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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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도의 전통춤, 국립부산국악원
  • 경상도의 전통춤, 국립부산국악원

    국립부산국악원은 영남 유일의 전통예술 본거지로, 경상도의 전통춤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시대 : 현대

    주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연지동 국악로 2

 

국립부산국악원은 영남지역 부산에서 우리 전통공연예술을 보전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도록 설립된 국가문화예술기관이다. 전국에 4곳뿐으로 각각 지역의 특색을 살리고 전통예술을 널리 알리기 위해 꾸준히 힘써 우리 전통예술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1987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자리 잡은 국립국악원이 그 중심에 있으며 전북 남원에 국립민속국악원(1992.3.20개원), 전남 진도에 국립남도국악원(2004.7.7 개원), 부산광역시에 국립부산국악원(2008.10.28 개원) 등 세 개의 지방 국악원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부산국립국악원의 부지는 과거 하야리아 기지 미군 장교 숙소로 사용되었는데 1999년도에 부지가 반환되어 2004년 국악원 건설에 착공할 수 있었고, 2008년 전국에서 4번째로 국립국악원을 개원하게 되었다.


 오늘날 국립국악원의 역사로만 보면 국립부산국악원이 가장 짧지만 사실 부산은 국립국악원의 시발점에 해당하는 곳이다. 부산 용두산 공원에 가면 국립국악원 기념나무가 있다. 2001년 심어진 이 나무는 ‘한국전쟁으로 나라가 어렵던 1951년 4월 10일 국립국악원이 이곳에서 개원하여 오늘날 민족음악 중흥의 기틀을 다졌으니 이 터를 기념하여 나무를 심는다’ 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문장원의 삶과 예술』, 2011. 부산국립국악원총서 3, 2011 참조)


 우리나라 궁중음악기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8.15해방 후 궁중음악기관이 해체된 후 한때 구왕궁아악부(舊王宮雅樂部)로 존속하다가 1950년 비로소 국립국악원의 직제가 공표되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수도 서울이 아닌 1951년 부산에서 개원하게 된 것이 오늘날 국립국악원의 시작이다. 수복 후 이내 국악원은 수도 서울로 옮겨갔지만 부산에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당시 많은 전통예술가들이 부산 용두산에 자리한 국악원에 모여 전통예술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여념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오늘날 용두산 공원 그 자리에는 기념나무 한 그루가 남아 있을 뿐이지만 이곳에서 조상들이 꿋꿋이 지켜낸 우리 소리, 우리 춤은 전국4개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국립부산국악원은 지역의 정서가 오롯이 담긴 전통공연예술을 바탕으로 한 공연, 교육, 연구를 활성화하며, 아시아·태평양 민족 공연예술센터로서의 비전을 가지고 국제교류 사업을 전개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립부산국악원은 개원 이래,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국악의 예술성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데 기여하고 국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충분한 신선한 공연들을 수차례 선보일 수 있었다. ″국악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것이다?″ 국악원의 공연을 직접 보고나면 이런 편견에서 깨어나게 된다. 공연을 한번 보고나면 열에 열 명이 꼭 다시 또 찾고 싶다고 말하는 곳이 부산국립국악원이다.


 국립부산국악원의 매력은 영남지역의 전통춤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부산 경상도 사람들은 말이 투박하고 짧은 대신 몸의 리듬, 춤의 율(律)은 반도에서 독보적이다. 영남지역 특유의 풍류와 한의 정서는 아름다운 춤이 되었다.   “전라도 가서 소리 자랑 말고, 경상도 가서 춤 자랑 마라” 부산은 말 그대로 춤의 고장이다. 동래야류, 수영야류, 한량춤 등 온갖 춤이 다 있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 여러 춤 중에서도 경상도 춤의 기본은 일반적으로 향토춤과 한량춤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향토춤과 한량춤의 뿌리가 부산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부산에는 큰 관아가 있어 관기의 전통이 이어내려 왔고, 물산 교류의 중심지로 도시가 발달되어 일제 식민지 시대에 권번이 있었다. 특히 부산 동래에는 기생이 많았고 한량이 많았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곧 전통춤의 발전·계승으로 이어졌다. 부산지역 중에서도 동래를 중심으로 전통춤을 꽃피웠던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동래에는 다양한 전통춤이 그 가치와 예술성을 인정받아 전승되어 오고 있다. 1967년에 동래야류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고, 1972년 동래학춤이 부산지방 무형문화재 제3호, 1977년 동래지신밟기가 제4호, 1993년 동래고무가 제10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05년에 동래한량춤이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이처럼 문화재로 지정된 동래의 전통춤에는 향토춤의 형식이 돋보이며 또한 한량춤 계열이 많은데 이 한량춤이라는 것이 부산경남지역 기방문화인 권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량춤은 원래 향토춤을 추던 토박이 한량이 기방의 기생들과 어울려 춤을 추면서 기방춤의 영향을 받아서 세련된 춤인 것이다. 동래 지역에서는 한량춤이 들놀음의 춤도 되고, 학춤도 되었다. 국립부산국악원이 전하는 우리 고장의 풍류는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를 향하고 있다. 크루즈 선을 타고 부산에 오는 많은 외국인들이 이곳, 국악원을 찾고 "원더풀" 찬사를 연발한다. 또한 부산은 유라시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는 만큼, 국립부산국악원은 중국과의 활발한 전통문화교류도 추진하고 있다. 공연단이 중국 서안을 직접 찾아 부산의 전통춤을 선보이고 우리 고유의 소리를 전하면서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바도 있다. 한국의 멋과 흥을 매개로 국악세계화에 한발 더 나아가는데 국립부산국악원이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