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문화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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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도, 보림, 삼성, 삼일, 부산의 극장들
  • 국도, 보림, 삼성, 삼일, 부산의 극장들

    이들 극장은 동구 범일동에 위치한 이른바 ‘극장 트리오’, 한때 부산에서 잘나가던 극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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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지역에는 극장이 18개나 있었다고 한다.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 골목으로 쭉 가면 천보극장이 있었고 대도극장, 수정극장, 초량극장, 미성극장도 있었다. 범일동엔 삼성극장, 삼일극장, 보림극장 등이 몰려 있었다.

동구의 극장 이야기라면 보림극장 쇼를 빼먹을 수 있나. 고무공장 다니는 사람들은 다들 한 번씩은 거기 가서 쇼를 봤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쇼를 했다. 1층엔 맥도날드가 있었고 2,3,4층이 영화 상영관이었다. 4층엔 휴게실이 있어서 장기랑 바둑도 둘 수 있었다. 좋은 자리를 잡아놨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파는 경우도 많았다.

 

보림극장(1955~2007년)과 삼성극장(1959~2011년)은 국제고무와 삼화고무 공장이 들어선 교통부 인근에 있었다. 교통부는 지금의 범곡교차로 주변 임시수도 시절 교통부 청사가 있었던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여기에 삼일극장(1944~2006년)까지 더해 범일동 극장 트리오를 이뤘다. 이곳은 전국의 대형 개봉관에서 개봉하고 몇 달이 지난 영화의 필름을 받아 상영하는 3류 영화관이었으며 두 편을 연달아 볼 수 있는 동시상영관이었다. 여러 번 돌리다 보니 필름이 끊기거나 상해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경우도 빈번했지만 누가 뭐래도 영화는 당시 최고의 오락거리였다.

 

이들 극장은 동구 범일동에 위치한 이른바 ‘극장 트리오’, 한때 부산에서 잘나가던 극장들이었다. 이제 이 극장들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극장이 되었다.

이들 극장은 60년 가까운 세월을 영화의 바다, 부산을 지켜 왔다. 가난한 시절 청춘의 시름을 잠시 달래던 극장 거리, 그곳에 삼일극장과 삼성극장, 보 극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1940~1950년대에 잇따라 개관한 삼일극장과 삼성극장, 보림극장은 부산 동구 범일동 영화 거리를 형성하며 유명세를 탔다. 범일동 극장 트리오 가운데 가장 먼저 문을 연 것은 삼일극장이다.

 

삼일극장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일본인에 의해 처음 문을 열었다. 해방 후 삼일극장은 조일극장과 제일극장 등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하다가, 1950년대에 다시 삼일극장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영화 「친구」 촬영지로도 유명한 삼일극장은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수용소로 쓰여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품은 공간이기도 하다.

 

1959년에 개관한 삼성극장은 삼일극장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삼성극장은 인근의 삼일극장, 보림극장과 함께 범일동에서 재개봉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단층이었던 삼일극장에 비해 삼성극장은 2층 건물에 제법 넓은 관람석을 갖춘 극장이었다.

 

1955년에 문을 연 보림극장은 원래 남포동에 위치한 보림백화점 내 2층에 자리했었다. 그러다 1968년 당시 범일동 조양직물공장 부지를 매입하여 현재의 자리에서 새로이 개관했다.

 

개봉관으로 출발했지만 당시 영화가 남포동 극장가를 중심으로 우선 배급되었기 때문에 보림 극장의 영화 배급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개봉관의 체면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보림극장은 1970년대 톱스타 나훈아, 남진, 하춘화 등의 쇼 무대 중심 극장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면서 한때 새로운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당시 보림 극장은 톱스타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부산 전역에서 몰려든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삼일극장과 삼성극장, 보림극장 가운데서도 보림극장에 손님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보림 극장에 손님이 가장 많았던 이유는 두 편 동시 상영에 힘입은 결과였다. 초창기 삼일극장과 삼성극장은 두 편 동시 상영이 아닌 한 편 상영이었다. 

사람들은 똑같은 돈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보림극장으로 몰렸다.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삼일극장, 삼성극장, 보림극장은 성인 전용관 혹은 두 편 동시 상영관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없어진 이들 동시 상영관은 40대 이후 세대들에게 각별한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극장이 처음부터 두 편 동시 상영관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개관 당시에는 정식 개봉관으로 수준 높은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또 어린이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어린이를 위한 영화 「독고탁」, 「로보트 태권브이」와 같은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당시 동구 범일동 일대에는 인근의 번화가인 남포동과 서면에 버금갈 만큼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은 삼화고무, 국제고무 등 수많은 고무 공장에서 일하는 고무 공장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이 바로 삼일극장, 삼성극장, 보림극장의 주요 관람객이었다. 인근의 고무 공장이 호황이던 시절에는 극장도 매일매일 손님들로 미어터졌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부산 신발 산업의 침체로 공장 노동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공장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보림극장과 삼성극장 주변의 새벽 일일 노동시장은 연일 북새통을 이루었다. 실직한 신발 업체 근로자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삼화, 진양을 비롯한 국내 신발 업계 간판 업체들의 잇단 도산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근로자들은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해 날품팔이라도 하기 위해 인력시장을 기웃거렸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날품팔이도 구하지 못한 실직자들은 인근 극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들에게 이들 극장은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러던 것이 다른 지역에 영화관이 급증하고 부산의 신발 산업도 점차 쇠퇴하면서 두 편 동시 상영관으로 바뀌었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중심지로 성장한 서면 일대에는 대형 극장들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새롭게 개관한 대형 극장들에 밀려 단관이었던 삼일극장, 삼성극장, 보림극장은 동시 상영관으로 탈바꿈함으로써 어렵게나마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극장 쇼와 동시 상영관으로 어렵게 명맥을 유지해 오던 삼일극장, 삼성극장, 보림극장도 1990년대 이후로 차례로 문을 닫았다. 삼일 극장은 2006년 동구 범일동 철길 건널목 입체 교차로 진입로 공사를 위해 철거되었다.

삼성극장 역시 2011년 중앙로 교통 흐름 개선을 위해 시작된 도로 확장 공사 구간에 있어 철거 대상이 되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보림극장 건물에는 극장이 문을 닫은 후 맥도날드를 거쳐 현재는 마트가 영업 중이다. 현재 보림극장은 사라졌지만 보림극장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버스정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