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문화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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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대포 어촌의 정서를 그대로, 다대포후리소리
  • 다대포 어촌의 정서를 그대로, 다대포후리소리

    다대포는 일본과는 대한해협을 가운데 두고 마주하는 우리 수군의 전초기지로 다다포진(多大浦鎭)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여기서 어획되는 다양한 어종은 이 고장을 풍요롭게 하는 어항으로도 명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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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포후리소리는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7호(1987.7.1 지정)로 (사)다대포후리소리보존회(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로 12)에서 전승ㆍ보존에 힘쓰고 있다. 다대포는 일본과는 대한해협을 가운데 두고 마주하는 우리 수군의 전초기지로 다다포진(多大浦鎭)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여기서 어획되는 다양한 어종은 이 고장을 풍요롭게 하는 어항으로도 명성을 높였다.

 

다대포의 토박이 촌로들은 ‘1다대, 2부산’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지금은 대도시 부산의 변두리이지만 부산산포 보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주민들의 자부심을 대변하는 말이다. 다대포는 예로부터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온 어촌으로 최근까지 소규모나마 멸치후리질을 해왔으며, 다대포 낫개(지금의 다대2동 현대아파트 터) 지역에서 멸치저인망어업에 종사하던 토착 어민들이 많아 멸치잡이 후리질에 관한 어로요(漁撈謠) 및 어로풍속(漁撈風俗)을 다른 지역보다 많이 간직하고 있다.

 

멸치잡이는 보통 음력 3월 초순부터 시작하여 4월 말까지 젓갈용인 봄 멸치를 잡는 시기이며 5~6월은 작은 멸치, 또 추석 즈음에서 11월까지 가을 멸치가 잡히고 겨울이 오면 철망 한다. 당시의 조업 방법은 후릿그물이라는 그물코가 촘촘한 대형 그물을 해안에 넓게 둘러치고 야망대에서 지키고 있는 망수가 멸치 때가 그물 안에 들어오면 신호를 하여 배나 해변에서 수십 명의 남녀 어부들이 일제히 벼리 양 끝을 당겨 해변까지 끌어올려 잡는다.

 

다대포후리소리는 이런 조업과정과 잡은 멸치를 가운데로 모으기 위해 그물을 쪼면서 부르는 그물 터는 소리, 멸치를 소쿠리에 가래로 퍼 담아 어장에 설치된 저장 통에 운반하며 부르는 가래소리, 가래질을 마친 후 어장에서 마을 사람들이 벌이는 풍어 잔치와 기원의식 등 전 과정에서 부르는 3~4박자의 단조로운 노랫소리다. 지금은 시연을 위해 8개 과장으로 나누어 제1,2과장은 풍어를 비는 당산제와 용왕제이고 제3과장은 그물을 옮겨 배에 싣는 소리, 제4과장은 고기 잡으러 가는 소리, 제5과장이 후리소리로 그물을 당기는 소리다. 이어서 제6과장은 그물터는 소리, 제7과장은 가래질 소리, 제8과장은 풍어소리로 정리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대포후리소리에는 바다와 육지의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는 내용이 먼저이고, 이후의 전 과장에서 다대포 어민들의 일상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일반적인 노동요에서 나타나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상민들의 애환이나 양반을 희화는 모습보다는 전통적 윤리관에 입각한 충효(忠孝)와 우애(友愛)를 강조하는 내용을 많이 볼 수 있다.

 

“첫째 독은 헐어다가/ 나라에다 상납하고/ 둘째 독은 헐어다가/ 부모님 전에 봉양하고/ 셋째 독은 헐어다가/ 형제간에 갈라먹고/ 넷째 독은 헐어다가/ 이웃 간에 노놔 먹지/ 남은 독은 팔아다가/ 논밭전지 많이 사서/ 부귀영화 누려보세”-<제3과장 그물 싣는 소리 부분>

그리고, “여보시오 어부네들/ 부귀영화 탐치마소/ 고대광실 부러마소/ 오막살이 단칸이라도/ 태평성대가 비친다네/ 부지런히 일을 해서/ 나라상납 하연 후에/ 나라 부강 하연 후에/ 태평성대를 누려보세/ -<제5과장 그물 당기는 소리 부분>

“우리 겨레 단결하여/ 피땀으로 세운 나라/ 너도나도 건설해서/ 억천만 년 누려보세”-<제8과장 풍어 소리 부분>

 

이러한 가사에서 보듯 개인보다 국가의 번영과 안녕을 중요시하는 공동체 우선의 내용은 이 지역이 주민들이 오랜 세월 동안 왜적의 침략에 저항해 오는 가운데 형성된 나라 사랑의 정서가 잘 나타나 있다고 느껴진다.

 

다대포의 멸치잡이후리질은 1960년대 초까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다대포의 어민들은 그 작업 과정은 물론 어로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멸치잡이에 소요되는 어구와 작업의 방법을 재현·보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후리소리 역시 다대포지역 나름의 특성을 간직한 민속적, 음악적 가치가 뛰어난 무형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