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역사와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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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의 역사, 경남 최초의 장로교회, 부산진교회
  • 100년의 역사, 경남 최초의 장로교회, 부산진교회

    영남 최초의 개신교회인 부산진교회(釜山鎭敎會)는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증산 기슭(동구 정공단로17번길 16)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교회이다. 부산진교회의 설립목적은 부산지역에서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부산 시민에게 복음과 사랑을 알리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시대 : -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1동 정공단로17번길 16

 

영남 최초의 개신교회인 부산진교회(釜山鎭敎會)는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증산 기슭(동구 정공단로17번길 16)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교회이다. 부산진교회의 설립목적은 부산지역에서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부산 시민에게 복음과 사랑을 알리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는 서울 다음으로 부산을 영남지역의 중요 선교지로 지목하고 윌리엄 베어드(W. Baird. 배위량) 선교사를 1891년 부산으로 파송했다. 베어드는 선교부 설립을 위한 대지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미국공사 헤어드(A. Heard)의 도움으로 지금의 부산진교회 부근에 대지 80여 평의 한옥을 사들였다. 그해 11월에 베어드 부부는 그 당시 공사관에서 일하던 미국인 가족들과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얼마 후 베어드의 집에서 일하던 한국인 몇 사람도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던 것이 부산교회(후일 부산진교회로 개칭)의 시작이다.

 

1891년 1월 최초로 설립 예배를 드렸다. 베어드 선교사는 1894년 4월에 최초로 조선인 심상현(沈相炫)과 다른 2명의 여인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이후 1900년 10월에 왕길지(G.Engel) 선교사가 초대 목사로 부임하면서 교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1901년에는 70여 명의 사람이 세례를 받을 정도로 교회의 규모가 커진다. 그러던 중 1904년 5월 27일 부산교회 당회조직(당회장 : 왕길지-G. Engel-)가 조직되고, 심상현의 아우 심취명(沈就明)이 장로가 서기가 되면서 조직교회로 발돋움하였다. 1904년 5월 29일 최초로 성찬예식 거행(조선형제 64명, 선교사 가족 7명)되었다.

 

1906년 성전 건축을 착공하였고, 심취명은 후일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후 1914년 1월 13일 경상 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부산진교회 동사목사로 시무하다가 담임목사가 되었다. 당시 담임이던 왕길지 목사는 1910년 이후로 평양신학교 강의 등 다른 일을 많이 맡아보아야 했다. 그 때문에 교회를 종종 비워야 했고, 호주 선교부 매켄지(W.J.Mackenzie, 매견시) 선교사가 교회 일을 맡아 도움을 주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1년 부산진교회에서 경상 노회가 조직되고 왕길지 목사가 노회장으로 선출되어 영남지역 교회가 조직을 갖추어나는데 사실상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경남 성서학원과 부산 YMCA도 이 교회로부터 출발했다.

 

1919년 제3차 성전 건축을 착공하였고, 7월 10일에는 새 성전 건축 입당. 남녀석 가운데 휘장 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인접한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대부분 부산진교회 교인이었고, 이들은 1919년 경남 지역 3·1운동의 중요한 도화선이 되었다. 이 밖에도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최상림 목사와 최재화 목사가 부산진교회의 담임목사를 역임했으며, 교인 양한나 여사는 상해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했고 해방 후에는 여권신장을 위해 부산 YWCA를 창설하기도 했다. 1923년 12월 16일에 세운 부산진교회 부설 일신유치원은 부산 최초의 유치원으로 지금까지 9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산지역 유아들의 교육에 앞장서 왔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피난민이 부산으로 밀려들었고, 부산은 3년 동안 임시 수도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부산진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던 매켄지 목사의 두 딸이 호주에 있다가 전란으로 혼란한 가운데 부산에 다시 돌아와 의료봉사에 앞장섰다. 호주선교회가 1952년 9월, 부산진교회 옆 호주 선교부 자리에 일신기독교병원을 개원한 것이다. 매켄지 목사의 두 딸 중 매혜란(Helen Mackenzie)은 여의사로서, 또 매혜영(Catherine Mackenzie)은 초대원장이자 간호사로 봉사했다.

 

1965년 경남 양산군 기장면(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기장면 만화리에 있는 29,700㎡ 규모의 교회 묘지를 매입하였다. 1974년 1월 교육관 건립을 착공하였고, 4월에는 용호제일교회가 설립되었다. 1981년 1월 울산 봉계교화를 설립하였다. 2000년 9월 선교, 교육, 사회봉사관을 위한 부지 448.8㎡을 매입하였으며, 973.5㎡의 주차장을 설치하였다. 2006년 8월〜11월 교회 건물을 리모델링 하였다. 2010년 1월 왕길지(王吉志)[겔손 엥겔(G. Engel): 1868~1939] 기념관을 만들었다.

 

부산진교회는 한 세기 풍운의 민족사와 함께 해온 오랜 역사에 비하여 대형교회로 성장하지는 못했으나 인적구성이 거의 부산의 토박이들로 구성되어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영남 최초의 개신교회이고 부산의 중심교회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으로는, 교육 및 훈련으로 열린 모임, 새 가족 섬김 이사역, 양육반, 제자 대학(제자의 삶, 군사의 삶, 재생산의 삶), 전인적 치유 수양회, 은사 발견 세미나, 새가족 섬김이 학교, 중보 기도학교, 리더 수양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주일 학교의 교육은 세대별로 새싹교회, 두드림교회, 울림교회, 예담교회 등으로 구분하여 조직적인 교사 훈련과 교육과정을 적용하고 있으며, 사회봉사는 노인대학과 ‘꿈꾸는 오병이어’(중고품 나눔)를 운영하고, 부산진 문화교실을 열어서 지역사회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펼치고 있다. 또한 지역 아동을 위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